
구용산수위관측소 (서울시 기념물 제 18호 2002.2.5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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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5일 서울시지정문화재 "서울시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된 구용산수위관측소(청암동 169소재)한강변에서는 최초로 건립된 철근콘크리트 우물통 형태의 자기관측소로서 조위와 홍수위를 관측할 목적으로 1924년 건립되어 1925년부터 50여 년 동안 한강의 수위를 측정해 왔습니다.
건립 당시 최첨단인 철근콘크리트 우물통 방식을 채택, 하인이나 하중 암반에 철근콘크리트 우물통을 만들고 그 안에 부자를 띄워 자동으로 수위를 잴 수 있도록 했습니다. 6.25전쟁 등에 잠시 가동을 중단한 것 이외에는 1925년 초부터 1976년 9월까지 줄곧 한강의 수위를 측정해 왔습니다. 구용산수위관측소가 1925년 측정한 을축 대홍수 당시 수위 12.71m가 지금까지의 기록중 최고라고 합니다.
현재는 관측수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없어지고 상부 관측실 내 관측기구도 손실되었으며 외부의 목측용 자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남아 있습니다. 수위 측정을 하던 독립구조물로서는 서울 한강변에서는 유일한 현존물이며 전국적으로 남아 있는 예가 희귀한 것으로 간주되어 2002년 2월 5일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서빙고동부군당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호 1973.1.26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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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빙고동 부군당은 서빙고동 200-2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호 (1973. 1. 21.지정)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당의 구조는 현재 80여평의 대지에 약 3평 내외의 맞배지붕의 한옥이 있다. 본당 앞에는 10여평의 마당이 있고 본당 왼쪽에는 약 15평 정도의 제물청이 있는데 이것을 하주청이라 부릅니다. 이곳에는 부엌이 있고 그 외에 마루, 온돌방, 창고가 있습니다. 이 건물도 맞배 기와집이며 주위에는 돌담으로 둘려 있고 대문은 기와를 얹은 솟을 대문 형태로 문의 가운데에 태극의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본당 내에는 정면에 2점, 측면에 1점, 모두 3정의 신상이 화상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신상을 중심으로 3면에 제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본당내에 3개의 현판이 있는데 당내의 서까래에 걸려있는 현판에는 『 崇禎紀元上之十三 乙亥四月十八日重建 (숭정기원상지십삼 을해사월십팔일중건) 』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보면 1635년(인조 13, 을해년) 즉 지금부터 약 350여년 전으로서 당의 역사를 추정케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현판은 『 老人禾契 員座目 (노인계약원좌목) 』이라는 내용에는 『光武 七年 癸卯 五月 (광무 칠년 계묘 오월) 』이라 기록된 현판이 있습니다. 광무 7년은 1903년에 해당된다. 이로 보아 현판의 기록은 90년에서 3백년이상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주청 마루에는 『 府君堂重修記 (부군당중수기) 』란 현판이 있는데 정묘(丁卯) 5월 쓴 것으로 보아 1927년 즉, 일제시대에 단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집 왼쪽에는 시멘트로 만든 터당의 유래는 앞서 기록에서 1635년 (인조 13년, 을해)에 중건한 것으로 보면 최소한 4백년 이상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당의 주신(主神)이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이기 때문에 태조 사후에 이 당이 건립된 것으로 보아도 15세기 말이나 16세기 초에 생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노인계원의 명단이 적혀 있는데 이것도 조선후기, 즉 지금부터 약 150년 전 것으로 보입니다.
본래 이당은 옛날 특무대 자리에 있었으나 1910년경 일제가 훈련장을 만들면서 현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산상은 제당내에 3점의 신상이 모셔져 있으며, 청색, 적색, 그리고 황색으로 되어 있는 휘장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정면에는 이성계와 그 부인의 신상이 2점 있고 그 왼쪽 벽면에는 삼불제석(三佛帝釋)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태조 부인상은 강씨부인(康氏婦人)의 화상(畵像)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두손을 맞잡고 있는 형태이며 그 좌우에는 시녀가 한사람씩 서 있습니다.